현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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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찾지 마세요, 마을분에게 물어보세요 : 월장석친구들 <천장산우화극장과 함께 서서히학교–극장지배인편> 참관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1-15 16:09
조회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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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산우화극장과 함께 서서히학교극장지배인편>의 시작을 알리는 마을 어귀의 공터

 

_고주영_공연예술 독립 프로듀서

편집_안선정_서울문화재단

사진_박보라, 안선정_서울문화재단



월장석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도상 성북구에서도 가장 동북쪽에 있는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따지면 월곡동-장위동-석관동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세 개의 동임에도 성북구의 다른 동에 비해 면적도, 인지도도, 인구밀도도 높지 않다. (대학로에서 점차 밀려온)예술가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지만, 예술이 활성화되지 않은, 장년층 이상의 인구비율이 높은 이곳을 하나로 묶은 사람들은 7개의 문화예술인 공동체가 있다. 바로 전문 공연예술극단, 2개의 문화기획자그룹을 비롯해 시각예술가, 음악예술가 등이 포함된 문화예술인 공동체월장석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문화예술 정책, 공간, 기획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꾸려가는 가장 앞선 사례로 회자되고 있는데, 성북구에서도 위 세 개 동에 삶과 예술작업의 뿌리를 내리고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마을극장과 예술공간을 운영하고, 마을예술축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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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때로는 카페 겸 식당으로, 때로는 전시공간이자 창작공간으로 운영되며,

문화예술인과 마을주민들을 이어주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 마을에 초대를 받은 것은 월장석친구들이 운영하는 마을극장천장산우화극장의 새로운 극장지배인들이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월장석친구들은 극장지배인을 단순히 관객을 맞이해 안내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서 지역()의 이야기와 극장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 역할을 지역에 사는 어르신과 고등학생에게 맡겼다. 4개월 동안 극장의 시스템과 지배인으로서의 역할을 습득함은 물론, 함께 활동하게 될 다른 세대, 공연예술에 대한 이해까지 폭넓은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한 마을 출신 극장 지배인들은, 10월 드디어 관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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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을 맞춰 입은 극장 지배인들이 관객들을 맞이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신참 지배인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은 극장 대신 관객을 만난 곳은천장산우화예술제라는 이름의 마을예술축제였다. 색깔을 맞춘 옷으로 제복을 대신한 지배인들은 노래로 관객을 맞이하고는 마을 이곳저곳에 설치, 공연, 상영되는 예술작품 앞으로 관객을 이끌고 가, 때로는 함께 관람하고 때로는 작품해설을 하는 방식으로 예술현장에 데뷔했다. 지금껏 상상하며 준비했을 극장이라는 안정적인 공간을 벗어난 데뷔는 상당히 터프했다. 사방이 열려 있고 차량도 사람도 오가는 야외공간에서 지배인들의 목소리는 주변 소음에 묻히기도 했고, 관객이 이동해야 할 동선 역시 극장처럼 단선적이지 않았다. 설명해야 할 설치작품은 추상적이고, 관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안내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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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지배인 역할을 맡은 어르신이 마을에 설치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무엇도 수월해 보이지 않았고, 무엇도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이분들이 이번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거의 처음으로 예술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나에게는 낯선 이 마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인 이상, 믿을 수 있었고, 친근했고, 마음이 열렸다. 월장석친구들이 의도했던 것 역시, 세련됨으로 무장한 프로페셔널 지배인이 아니라 마을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공연에서 마을 관객들을 맞이할 마을극장의 주인을 찾아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극장지배인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나는 또 한 명의 지배인을 만났다. 축제 관람 동선 안에 짝을 이뤄야 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혼자 오신 어르신께 호기심이 생겨 짝을 청했다.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면서 어르신은 꽃으로 뒤덮인 집에 대해,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이 마을의 기온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공식 코스 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등산길 초입 정자에 가서 설치작품도 함께 보고, 동네의 지름길과 사시는 집과 어제 본 축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셨다. 저녁 먹고 산책 가다가 축제에서 틀어주는 영상작품을 보게 되었다고, 어제 못 본 앞부분을 보러 오늘도 산책을 갈 예정이라고. 같이 가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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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는 영상, 사진, 설치물 등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재개발의 칼끝을 (아직은) 피하고 있는 서울의 오래된 마을에, 오래된 주민들이 살고있는 곳에 예술이 새 이웃이 되었다. 여차하면 달려가 줌 접속을 도와줄 수 있는 예술인이 마을 어르신의 선생님이 되었다. 마을 어르신과 고등학생이 예술을 감상하러 온 외지사람을 맞이한다. 마을 주민이 축제 프로그램을 권한다. 지역에, 일상에, 삶에 단단히 발바닥을 붙인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을 월장석에서 오랜만에 만났다.